
제주앓이를 할 때마다 책을 한 권씩 사 모았다. 어떤 책은 선물했고, 어떤 책은 중고서점에 넘기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품에서 놓지 못한 책이 있다. 손민호 기자의 『제주, 오름, 기행』이다. 명소나 맛집보다 제주의 자연과 역사, 사람 이야기를 조용히 들려주는 책이다.
곧 짧은 일정으로 제주에 다녀올 예정이다. 제주에서의 시간은 훨씬 빠르게 흐른단걸 알기에 일정표를 머릿속에 그리고 있다. 다시 가고 싶은 곳도 있지만, 이번엔 늘 마음에만 담아두었던 송악산으로 정했다. 탐방로 폐쇄와 통제가 반복되며 번번이 가지 못했던 곳이다.
책 속 송악산은 예전부터 신혼여행지이자 수학여행지였고, 한때 관광객이 붐비던 곳이다. 하지만 그 해안절벽엔 일본군이 파놓은 진지동굴이 15개가 있고 능선에 있는 것까지 합치면 60개가 넘는다고 한다. 무너지고 입구가 막힌 채 방치된 동굴들, 그 아래 스러진 시간들이 오름의 이미지를 바꿔 놓는다.
북쪽 섯알오름엔 더 큰 진지동굴과 대공포 진지가 있었고, 패전 직후 일본군이 군사기지를 폭파하면서 오름 일부가 잘려나갔다고 한다. 그 기지는 알뜨르 비행장과 연결되어 있었다. 마을을 밀어 만든 그 비행장에서 가미카제 훈련기 수백 대가 중국 난징으로 이륙했다는 문장을 읽고는, 잠시 책장을 덮을 수밖에 없었다.
섯알오름에는 또 하나의 비극적인 역사가 있다. 한국전쟁이 이후 양민학살이 있었던 곳에 ‘섯알오름 예비검속 희생자 추모비’가 서있다. 인근에는 당시 210명의 무고한 양민들이 희생되었고 곧바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사람들의 뼈를 대충 짜맞추어 만든 무덤인 ‘백조일손지묘’라 불리는 묘지가 자리한다. 위성지도로 무덤을 확인했을 때, 화면 가득 펼쳐진 수백 개의 무덤이 믿기지 않았다. 그 자리를 직접 마주할 수 있을까. 마음이 조심스러워졌다.
『제주, 오름, 기행』은 그런 제주의 이면을 보여주는 책이다. SNS에 풍경 사진을 올리고 돌아오는 여행으로는 결코 알 수 없는 것들이 담겨있다. 차로 쉽게 갈 수 있는 오름, 사진 찍기 좋은 명소보다 제주의 정체성이 녹아있는 곳을 알고 싶게 만든다. 책의 부제는 ‘제주를 두 번째 여행하는 당신을 위한 오름 40곳’이다. 제주의 외면을 본 첫 번째 여행 이후, 내면을 바라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부터 펼쳐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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