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기다소나무, 황폐한 산에 심긴 식민지의 그림자
소나무는 다 비슷해보이지만 잎을 자세히 보면 종류를 구별할 수 있습니다. 소나무의 바늘잎은 2개이고, 3~4개가 달린 나무는 바로 ‘리기다소나무(Pinus rigida)’입니다. 단정하고 튼튼해 보이는 이 나무는 사실 우리나라 토종이 아닙니다. 북아메리카 원산의 외래 수종으로, 일제강점기에 대규모로 심어진 식민지 조림의 흔적입니다.
리기다소나무는 1900년대 초 일본이 먼저 자국에 들여온 수종입니다. 메이지 유신 이후 산업화를 추진하며, 일본은 빠르게 자라고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나무들을 도입해 조림에 활용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이 리기다소나무였죠. 특히 병충해에 강하고, 불에도 잘 견디는 성질 덕분에 주목받았습니다. (불에도 잘 견딘다는건 두꺼운 수피, 맹아 재생력, 화재 이후 종자 발아력이 좋다는 의미입니다. 반면 송진에 의해 화재를 키우기도 합니다.)
이후 일본은 산림 황폐화가 심각했던 조선에 이 수종을 적극적으로 보급합니다. 벌채와 화전으로 망가진 조선의 산을 ‘복구’한다는 명분 아래, 리기다소나무는 경북, 강원, 충청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식재되었죠. 이 나무는 빠른 생장, 내화성, 송진 채취 가능성 등 여러 면에서 ‘효율적인 자원’이었고, 조선의 산을 식민지 자원으로 활용하려는 일본의 목적과도 잘 맞아떨어졌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문제도 나타났습니다. 리기다소나무는 토양을 산성화시키고, 낙엽 분해가 느려 생태계의 순환을 방해합니다. 또 단일 수종 숲은 생물 다양성을 떨어뜨리고, 산불 등 위기 상황에도 복원력이 낮습니다. 그럼에도 과거에는 산업적 효용성 때문에 널리 심어졌고, 지금도 일부 지역에는 그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현재 한국에서는 리기다소나무를 우선 제거 대상 외래 수종으로 분류하고, 점차 토종 나무들로 대체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바뀌고 있습니다. 다만 모든 지역에서 일괄 제거하기보다는, 생태계 영향과 지역 상황을 고려한 맞춤형 관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많죠.
결국 리기다소나무는 단순히 “외래종이니까 없애자”는 식의 접근보다, 과거 식민지 시기의 역사적 배경과 현재 생태계의 현실을 함께 고려해야 할 나무입니다. 우리 산을 덮고 있는 침엽수림의 풍경 뒤에 감춰진 이야기였습니다.
일제강점기 조림의 흔적 : 아카시아 나무 이야기
https://theacorns.tistory.com/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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