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카시아? 아까시! : 일제가 심고, 우리가 떠안은 나무

🌳 아카시아? 아까시! : 일제가 심고, 우리가 떠안은 나무

공기중에 은은한 꽃 향기가 퍼지는 5월은 하얀 아카시아의 계절입니다. 어린시절 아카시아 잎과 줄기를 가지고 놀기도 하고, 꽃 튀김을 만들기도 했던게 떠오르네요. 이 아름다운 아카시아에겐 '일제가 심은 나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는데요, 사실일까요?

 

아카시아 나무의 진짜 이름은 아까시나무(Robinia pseudoacacia)로, 북아메리카 원산의 외래종입니다. 너무도 익숙한 풍경이지만, 사실 이 나무는 일제강점기 시기 일본이 도입해 전국적으로 퍼뜨린 대표적 수종입니다.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의 산림은 오랜 벌채와 화전, 땔감 채취로 인해 심각하게 황폐화되어 있었습니다. 이를 복구한다는 명분으로 일본은 생존력이 강하고 빠르게 자라는 외래 수종들을 선택했는데, 그중 핵심이 아까시나무였습니다. 질소 고정 능력을 지녀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고, 성장 속도도 빠르며, 사방(산사태 방지) 사업이나 황폐지 복구에 매우 적합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일본은 왜 아까시나무를 선택했을까요? 단지 빠르게 자란다는 이유만은 아니었습니다. 사실 아까시나무는 이미 19세기 후반, 유럽을 거쳐 일본에 도입되어 조림 수종으로 널리 사용되던 나무였습니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서구식 농업·임업 기술을 받아들이며 아까시나무의 유용성을 경험했고, 황폐지 복구, 토양 개선, 양봉, 목재 활용까지 여러 방면에서 그 가치를 검증한 상태였습니다. 이처럼 ‘검증된 수종’을 식민지 조선에도 확대 적용한 것이죠.

 

아까시나무는 목재로서도 매우 실용적인 자원이었습니다. 나무가 단단하고 내구성이 뛰어나 철도 침목, 광산 구조물, 농기구 손잡이, 울타리, 가구 재료 등 산업 전반에서 다양하게 쓰였습니다. 열량이 높아 땔감으로도 우수했기 때문에 농촌 가정에서는 꼭 필요한 생활자원이기도 했습니다. 즉, 아까시나무는 단순한 ‘복구용 나무’가 아니라, 자원으로 관리되고 수확 가능한, 식민지 경제에 맞춤형인 수종이었던 셈입니다.

 

일본은 조선의 산림을 단순히 복구하는 것이 아니라, 효율적으로 통제하고 수탈 가능한 ‘자원화된 자연’으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아까시나무처럼 짧은 수확 주기를 가진 관리형 수종은 그러한 전략에 적합했고, 그렇게 해서 이 나무는 식민지 조림 정책의 핵심 수단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아까시나무의 생태계에 대한 부작용도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번식력이 강하고 햇빛을 가리는 능력이 뛰어나 주변 식물의 생육을 방해하며, 산림 생물다양성을 감소시키는 문제를 일으킵니다. 뿌리가 깊지 않아 대규모로 군락을 이루면 산사태 위험도 높아질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나무를 쉽게 없애지 못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양봉 산업과의 밀접한 관련성 때문입니다. 아까시나무는 5월이면 꽃을 활짝 피워 꿀벌을 끌어들이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는 벌꿀인 '아카시아꿀'의 주요 원천이 됩니다. 양봉 농가에게는 경제적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에, 완전 제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과제입니다.

 

이러한 복합적 배경 속에서, 현재는 절충적 관리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생태계 보호가 필요한 지역에서는 제거를 진행하고, 양봉에 도움이 되는 지역이나 완충지대에서는 제한적으로 유지하는 방향이죠.

 

결국 아까시나무는 단순히 “일제가 심은 나무니까 없애야 한다”는 단선적인 접근보다는, 역사적 맥락, 생태계 영향, 경제적 현실을 함께 고려해야 할 대상입니다. 식민지 산림정책의 유산이자, 지금 우리의 풍경과 산업 속에 깊숙이 뿌리내린 나무. 앞으로는 이 나무를 ‘심을까, 없앨까’를 넘어, 어떻게 책임 있게 다룰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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