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물고기 커피로스터스'에서 쓰고 마시고 웃다
“어서 오십시요!” 카페 문을 여는 순간, 사장님이 단전에서 끌어올린 듯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신다. 요즘 이런 인사를 이렇게까지 힘차게 하는 카페 사장님, 드물다. 나는 괜히 눈동자를 굴리며 다른 손님을 살핀다. 내가 민망해하는 것도 이상하지만, 사실 손님을 신경 써야 할 사람은 사장님 아닌가. 일요일 오전 10시 30분, 아침을 조금밖에 먹지 않아 오트밀 라떼는 디카페인으로 부탁했다. 이미 작업대 위에는 드리퍼가 여러개 놓여있다. 오늘도 사장님은 챙이 일자로 뻗은 귀여운 스냅백과 베이지색 린넨 앞치마를 두르고 주문을 받는다. 늘 같은 모습, 그 한결같음이 괜히 든든하다.
지금의 카페는 2022년에 오픈해 이제 3년이 되었다. 카페 이름은 <물고기 커피로스터스>. 오픈하기 전 두 개의 이름을 놓고 고민하시던 모습이 엊그제 같은데,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물고기 카페>라는 애칭으로 불리고 있다. 무슨 이유로 결정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가게 이곳 저곳에 물고기 조각이나 그림들이 놓여있다. 그렇다고 생태학습장 같은 이미지는 아니고, 우리가 ‘물고기’라고 말했을 때 떠올릴법한 단순한 모양을 생각하면 될 것이다. 불교적인 의미이거나, 자유로운 상태를 지향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자리에 앉아 커피를 기다리며 공간을 둘러봤다. 단순하면서도 아기자기한 꾸밈들이 눈에 들어온다. 꽃송이처럼 생긴 스테인드글라스 조명이나 푸른빛의 타일들, 무라카미 하루키 포스터와 커피가 등장하는 영화의 한 장면들을 담은 포스터 등이 공간을 아늑하게 만들고 있다. 카운터 앞에는 사람들이 자주 구매하는 드립백이 진열되어 있고 오픈된 주방 너머에는 다양한 드리퍼들과 커피잔이 조용히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에스프레소 머신이 있긴 있는데 그저 스팀을 내고 컵을 데우기 위한 용도인 거란걸 단골들은 안다. 이곳의 모든 커피는 핸드드립으로 추출된다.
잔잔한 음악을 들으며 창밖에 피어있는 단풍나무 꽃을 바라봤다. 저 하찮아 보이는 꽃도 꽃이라고 벌꿀이 날아들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커피 나왔습니다.” 손으로 빚은 듯한 청록색 컵에 커피가 담겨있다. 사장님은 요즘 디카페인을 찾는 손님들이 늘었다는 이야기를 꺼내셨다. 디카페인 커피는 수면에 영향을 덜 주면서 일반 커피처럼 폴리페놀은 동일하게 함유하고 있으니 커피의 이점을 원하는 사람들에겐 좋은 선택지라고 했다. 이어 차례대로 모임을 함께하기로 한 언니들이 들어왔다. 다시 사장님의 우렁찬 인사 소리.
“벌써 테이블이 다 찼네? 오늘 무슨 날인가?” 곧이어 들어온 언니가 밝은 얼굴로 이야기했다. 평소 우리가 앉던 테이블에 이미 다른 손님들이 앉아 있었다. 우리는 글쓰기 모임을 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 조금 외진 자리에 모여 앉았다. 3주 간격으로 글쓰기 모임을 한지 1년이 넘었다.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우리가 만나 함께 책을 읽기 시작한건 10년도 더 넘었다. 그 시간 속에 카페 사장님이 계신다.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다른 이름으로 훨씬 크게 카페를 운영하고 계실 때였다. 마땅히 모임할 공간을 찾지 못해 카페를 전전하던 우리는 그 곳을 발견하고는 방랑 생활을 끝냈다. 사장님은 매주 주말마다 모여 책 이야기를 나누는 우리를 환영해주었었다. 100평이 넘는 매장을 발로 뛰며 빈 자리를 안내해주고, 주문하지도 않았는데 커피 리필과 디저트를 가져다 주곤 했다. 솔직히 그땐 그런 서비스가 조금 부담스러웠다. 핸드드립 커피 한 잔 값이 3500원이었으니까. 시간이 흐른 지금, 사장님의 환대는 여전히 진행중이다. 커피 값이 올랐냐고? 이곳을 친구들에게 소개해주면 다들 가격에 놀란다. 핸드드립 맞아?라고 하면서.
<물고기카페>는 테이블이 9개뿐인 소박한 공간이다. 과거 직원이 여럿이던 시절은 지나갔지만 두 번째 사장님이 일을 함께하기에 여유로운 분위기와 에너지가 만들어진다. 우리가 늘 글을 펼치고 수다를 풀던 자리는 이미 다른 손님에게 점령당했다. 하지만 뭐, 이제 우리도 꽤 유연해졌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면 “와, 좀 살 것 같다. 사장님이 내려주는 커피, 너무 마시고 싶었잖아”라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온다. 마치 모임보다 커피를 더 기다렸단 듯이. 글을 쓰겠다는 엉덩이 무겁고 말 많은 사람들의 비빌 언덕인 장소이자,(그 무게, 상상해보라.) 친구들에게 “광주 오면 꼭 가봐!”라고 소개하는 곳이지만, 사실 한두 번 봐선 안다 말하기 어려운 깊이가 있는 곳. 오래 봐야 정드는 얼굴 같은 곳. 오래오래 이 자리에 있어주면 좋겠다. 우리 모두를 위해서.

🌈 위치 : 물고기 커피로스터스 (주차는 ACC 주차장 2시간 이용 가능)
https://place.map.kakao.com/927650123
물고기 커피로스터스
광주 동구 장동로 34 1층
place.map.kakao.com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일상 : 천천히 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아카시아? 아까시! : 일제가 심고, 우리가 떠안은 나무 (0) | 2025.04.24 |
---|---|
📕『제주, 오름, 기행』 제주를 두 번째 여행하는 당신에게 (7) | 2025.04.23 |
🥗 요리실패담_ 1.당근라페 만들기 (3) | 2025.04.21 |
🐦 탐조 일지_ 생활탐조인의 하루(4월) (4) | 2025.04.20 |
🐾고양이_ 내년 벚꽃을 또 함께 볼 수 있기를 (2) | 2025.04.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