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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 천천히 사는 이야기

『세계 끝의 버섯』 산불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

by 실패요정 2025. 4. 8.

오늘도 산불재난 국가위기경보 '심각'단계,라는 재난문자가 왔다. 여름이면 장마, 가을이면 태풍, 겨울이면 폭설, 봄이면 산불... 재난도 제철이 있다.

🌲 올봄, 산불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서

올해 봄, 경북과 경남 일대에 큰 산불이 났다. 불길은 여의도 면적의 무려 150배가 넘는 산림을 태우고 지나갔다. 산불 발생이 잦아지고 있다는게 실감이 났고 숲과 사람들의 삶터가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게 충격이었다. 
“산불이 난 자리에 다시 무엇을 심어야 할까?”
많은 사람들이 “소나무는 이제 그만 심자”고 말한다. 소나무는 송진이 많고, 솔방울이 날아다니면서 불씨를 옮기기도 하기 때문이다. 소나무재선충병이 돌면 넓은 면적의 소나무들을 벌목해야하고, 그러다 산사태가 나는 지역도 있었다.
반면에 산림청은 소나무도 회복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환경부는 숲이 자연적으로 회복할 수 있도록 지켜보자고 한다.
같은 숲을 놓고도 이렇게 의견이 다르니, 뭐가 맞는 건지 헷갈린다. 
 

🪵『세계 끝의 버섯』은 어떤 시선을 줄까?

이럴 때 딱 떠오른 책. 바로 애나 로웬하웁트 칭의 『세계 끝의 버섯』이다. 이 책은 송이버섯에 대한 이야기이다.
근데 그냥 “버섯 책”이 아니다. 인간이 망가뜨린 자연 속에서도 살아남은 생명들, 그리고 그 생명들과 인간이 어떻게 얽혀 살아가는지를 따라간다.
책 속에서 송이는 전쟁이 끝난 곳, 벌목이 진행된 황폐한 땅에서 자란다. 풍요로운 장소가 아니라 인간이 파괴한 자연 위에서 버섯이 자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걸 따는 사람들과 시장, 숲, 시간들이 엮이면서 완전히 새로운 생태계가 만들진다.
이 책은 “자연은 복원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 “우리가 직접 뭔가를 하지 않아도, 자연은 회복될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한다.

🌿 생명은 혼자 자라지 않는다: ‘다종민족지’의 시선

『세계 끝의 버섯』은 인간과 비인간, 즉 모든 생명체가 서로 얽히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간다‘다종민족지(multispecies ethnography)’라는 관점에서 쓰여졌다.
송이버섯 하나가 자라기 위해서는 소나무 뿌리, 땅속 미생물, 곤충, 사람… 셀 수 없이 많은 존재들이 함께 작용한다. 한 생명체는 절대로 혼자서 자라지 않고, 언제나 누군가의 도움을 받거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얽혀 있는 관계들은 너무나 복잡해서, 사실 우리가 전체를 이해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이 책은 이렇게 말하는 듯 하다.
“우리는 자연을 관리하거나 설계할 수 없다. 그저 그 안에서 살아가고, 반응하고, 조심스럽게 함께할 뿐이다.”

🔥 ‘교란’은 정말 나쁜 걸까?

우리는 흔히 산불처럼 생태계를 파괴하는 사건을 ‘교란’이라고 부르면서 부정적으로 봐요. 물론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과 목숨을 잃은 생명들에겐 슬픈일이다. 하지만 칭은 그런 ‘교란’조차도 새로운 생명의 시작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하나의 예로, 책에 등장하는 오리건주의 인디언은 주기적인 산불로 관목과 낙엽을 관리했다. 미국이 정책적으로 산불을 금지시키자 숲이 무성해지고 소나무의 연령의 어려졌다. 이 결과, 오히려 훨씬 취약한 숲이 되었다.
또, 송이버섯은 다른 식물들이 다 사라지고 난 뒤에야 자라기 시작한다. 다시 말해, 파괴된 환경, 사람들이 떠나버린 황폐한 땅에서 스스로의 방식대로 피어난다. 그러니 자연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도 좀 더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무언가를 복원해야 한다는 강박보다, 무엇이 살아남았는지를 주의 깊게 살펴보는 태도. 그게 어쩌면 진짜 ‘공존’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 마무리: 우리는 통제자가 아니라 동행자

산불 복구와 관련하여, 인간이 자연을 적극적으로 통제해야 한다는 주장과 자연에 대한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립하고 있다. 하지만 두 입장 모두 인간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세계 끝의 버섯』은 인간이 자연의 주인이 아니라, 그저 함께 살아가는 존재 중 하나라는 걸 계속해서 상기시켜준다.  자연은 인간의 의도와 무관하게 스스로 회복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송이버섯은 그 대표적인 예시이다.
따라서, 인간의 역할은 자연을 완전히 통제하거나 방임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회복 과정을 이해하고(바라보고 귀기울이고) 적절히 조율하는 데 있을 것이다.  그 자리에 어떤 풀들이 자라는지, 동물들은 돌아오는지, 버섯은 언제 올라오는지… 자연은 항상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가 할 일은, 귀 기울이는 것이다.


세계 끝의 버섯. 자본주의의 가장자리엔 무엇이 있는지 들여다보게 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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